해마다 정초가 되면 올해는 어느 절에 가볼까 하고 찾아본다. 공식적인 불자(佛子)는 아니지만 세상에 어수선한 일이 많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한 해 한 해 더할 때 마다 몸도 마음도 힘에 부치는 일이 일어나기에 큰 힘에 기대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이다.

처음엔 절집 구경에서 시작했다. 가야산 해인사, 영취산 통도사, 조계산 송광사 등 이름 난 절집들을 찾아 풍광과 산세 좋은 곳에서 만나게 되는 절을 보면서 대웅전과 가람 배치, 기둥 모양, 연주 등을 보며 책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을 확인하며 흐뭇해 하고, 스님들께서 정진하기에 알맞은 조용한 분위기에 매료된 것이 출발이었다. 그러다 대웅전 옆 댓돌 위에 가지런하면서도 정갈하게 놓인 신발을 보는 순간 나도 한 번 들어가 볼까 하는 마음에 대웅전에 들어가 옆에서 열심히 절하는 분의 동작을 따라 어설픈 자세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무심코 일배, 이배, 삼배 하다 보니 바람이 생겼다. ‘집착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좋은 학생들 만나게 해 주세요, 내 마음도 학생들 마음도 좀더 너그러워지도록 도와주세요…우리반 아이들 좋은 대학 가게 해 주세요’

▲ 서인천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 경우에는 3학년 시작은 2월부터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출력해서 이력과 성적을 살펴보고 얼굴과 이름을 외우며 바로 개인 상담에 들어간다. 이것이 진학 지도의 시작이 되며 수없이 많은 상담을 거치면서 학생별 자기소개서, 추천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서 입시 전문 선생님들이 제공해주는 산더미 같은 자료들과 담임선생님에 대한 요구를 듬뿍 담은 눈망울, 몰려드는 서류 업무, 유형별 면접 준비 등 어느 하나 호락호락한 것은 없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학생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평온하고 너그럽고 몸이 건강해야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기에 한 해의 시작을 맞이하여, 절을 찾아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 보니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한산에 있는 절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부실한 다리가 문제였다. 빈 몸으로 30분만 걸어도 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나고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기가 일쑤였다. 그렇지만 가다쉬다를 반복하면서도 승가사, 진관사, 삼천사, 도선사 등 이렇게 절을 찾다보니 이제는 절을 품고 있는 산이 좋아져 절 위로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니 향로봉, 비봉, 승가봉을 지나 백운대까지도 그럭저럭 갈 수 있게 되었다. 산은 그냥 절이 있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배낭매고 능선에 올라 씩씩하게 걷고 있는 것이 부처님이 내게 준 가장 큰 복이 아닐까?

그렇다면 애당초의 목적달성은? 성공적이다. 학생들을 생각하는 교사의 마음을 부처님이 기특하게 여기셨는지, 해마다 두 번씩의 다짐이 나를 바꾸었는지 모르겠지만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보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입시 전문 선생님들의 도움과 우리반 학생들의 엄청난 노력이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자기소개서를 쓰며 함께 면접을 준비했던 학생들이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나를 믿고 묵묵히 따라준 학생들이 고맙다. 입시에 있어서 족집게는 없다고 본다. 올해에도 절에서 얻은 마음의 평안함과 산에서 얻은 건강한 몸으로 학생들에 대해서는 정성을, 수업과 업무에 대해서는 노력과 연구를 다짐하며 어디 다녀올까를 생각한다. 산에 있는 절이 좋은 건지 절이 있는 산이 좋은 건지 어쨌든 어느 산 어느 절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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