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000피트 상공에서 카메라에 담은 남한산성 전경 ⓒ최진연 기자

1,500년 역사를 가진 고색창연한 남한산성, 국내최초의 산성도시 남한산성이 지난해 6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유산등재는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인류공영의 가치를 지녔다는 인증으로 대단한 영예다. 국가 브랜드를 한층 높이는 효과도 있다. 30년간 남한산성 풍경과 역사의 흔적을 담아온 기자는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뛰었던 지난날의 추억들이 새삼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1981년 2월 어느 날, 남한산성에 폭설이 내렸다. 설경사진을 찍기 위해 난생처음 친구와 함께 동행 했는데, 당시만 해도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버스를 타고 거여동에서 내려 산성 우익문(서문)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약 50분후에 도착한 산성의 성벽과 문루를 본 순간 세상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마치 할머니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할 만한 산성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성문을 들어가 성벽 따라 올라가니 정상에 장군의 지휘소인 수어장대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서울 송파·한강·광주지역까지 한눈에 조망됐다. 당시에 산성종주는 못했지만 설경속의 고즈넉한 성벽은 기자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떠올랐다. 그 후 틈만 나면 남한산성을 찾아 역사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1990년대 중순에는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 약칭 ‘남사모’가 결성됐다. 이모임은 매달 정기모임을 갖고 남한산성 알리기에 나섰고, 세계유산등재에 큰 공로를 세웠다. 기자는 산성의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2012년에는 경기도가 지원해 준 헬기에 4번이나 탑승해 남한산성 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사진들은 세계유산등재에 밑바탕이 됐다. 남한산성의 항공사진촬영은 이 일대가 군사지역으로 사진취재에 통제가 많았으며, 또한 산성주변은 서울과 인접해 있어 대기오염도 심각했다.

▲ 한 폭의 동양화가 된 남한산성 우익문 ⓒ최진연 기자

남한산성 3,000피트 상공에서 내려다 본 성벽은 계곡과 산등성이를 타고 넘으며 용이 넘실되는 것 같았다. 주봉인 청량산(483m)을 중심에 두고 성벽이 좌우로 흘러내렸다. 동북쪽엔 외성인 벌봉과 한봉이 산줄기를 감싸 안았고, 남쪽 검단산 두 봉우리에도 신남성이 자리 잡았다. 남한산성의 본성과 외성은 끊어진 구간 없이 장장 12km나 이어졌다. 국내최대 규모의 포곡식 석축산성이었다.

수어장대 상공에서는 한성백제의 왕궁인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그 뒤쪽에는 신라의 대모산성이 손에 잡힐 듯했다. 연주봉 아래는 덜미재관애와 이성산성이, 구산토성 한강너머에는 고구려의 요충지 아차산성과 보루들이 나란히 이어졌다. 전승문(북문)계곡아래 고골에는 역사의 미스터리가 가득한 토루가 줄지어 분포돼있다.

멀리 시야를 넓히자 한강이 동에서 서로 길게 용틀임한다. 서울 북쪽을 병풍처럼 막아선 북한산성을 포함해 20여 개소의 크고 작은 산성들이 거미줄처럼 조망된다.

천수백년 전 백제, 고구려를 몰아내고 한반도를 통치했던 통일신라의 최고사령부로 손색없는 천험의 요새지에 남한산성이 자리 잡았다. 이 산성은 호국유적으로서의 가치에 더해 산성건축의 백미로 손꼽는다. 20개소의 성문, 5개소의 옹성, 행궁 등 성곽시설물들이 가득하다. 유사시를 대비해 자족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진 산성 도시였고, 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다했다.

▲ 제1옹성에서 본 남한산성 풍경 ⓒ최진연 기자

고려 때 대몽항쟁의 혈투에서도 남한산성은 위력을 발휘해 용인 처인성의 승리를 이끌었다. 남한산성의 함락은 곧 나라전체의 위기로 몰린다는 각오로 결사항전 해 병자호란 때 도 산성을 수호할 수 있었다.

구한말에는 천주교의 성지였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남한산성은 조선 후기까지 1,000여 가구에 4,000여 명의 인구를 자랑했다. 1917년 광주군청이 성 밖으로 이전하면서 유구했던 군사, 행정도시는 급격히 쇠락했다.

남한산성은 발굴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역사의 비밀을 안고 잠들어 있었다. 1998년부 터 2007년까지 한국토지박물관의 조사로 행궁의 실체가 드러났다. 백제유물과 고려 토 기와 온돌도 나왔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초대형 건물터가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조선시대 행궁에 비해 규모가 무려 3배나 큰 건물터였다. 두께 2m에 달하는 엄청난 건 물 벽과 한 장에 19kg이나 되는 세계최대 기와수백장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대형건물지 지붕에 사용됐던 기와가 붕괴된 상태로 출토됐다는 점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미스터리다. 이 건물터는 통일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쌓은 주장성과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인기 있는 수도권 역사 탐방코스 가운데 하나다. 공식적인 루트 외에도 숨겨진 아름다운 길들이 10
곳이 넘는다. 산성을 휘돌아 외성까지 둘러보는 데는 8시간이 걸린다. 산성곳곳에서 버티어온 거목들과 어우러진 고색 짙은 성벽. 특히 봄날 남문 밖으로 난 길을 따라 동문 일대까지의 산행 길은 절경이다.

가파른 산행을 즐기려면 동문에서 출발해 외성까지가 좋다. 이 길은 인적이 드물고 산새가 조잘대는 소리로 가득하다. 늦여름 서문에서 보는 한강의 낙조는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선연하다. 단풍은 망월사와 행궁주변이 현란하다. 설경에 흠뻑 취하고 싶다면 북문에서 수어장대로 가는 길에 올라보라. 계절을 막론하고 환상적인 길이다. 역사향기 가득한 옛길을 걷다보면 허물어진 성돌 하나에도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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