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따뜻한 봄이 오면 건축가로서는 선망의 대상인 건축의 노벨 평화상이라 불리우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발표에 귀를 기울인다. 올해는 포르투칼 태생의 건축가 에두아르도 소토 무라(Eduardo Souto Moura)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포르투칼은 2명의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는 영광과 더불어 건축문화 국가로 위상을 드높였다.

프리츠커상은 미국의 세계적 호텔체인 하야트재단(Hyatt Foundation)이 건축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을 보여주어 사람과 건축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한 건축가에게 표창하기 위해 1979년도에 제정한 상이다. 이 상을 수상하면 개인의 영광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건축계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이는 자국의 건축문화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다. 그 만큼 프리츠커상은 세계적인 권위와 신뢰 속에서 건축가라면 누구나 흠모하는 위대한 상이다. 이러한 상이 33번의 시상식이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우리나라 건축가는 없었다. 이미 이웃나라 일본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가 무려 5명에 이른다. 이는 미국에 이어 2위 나라이며, 건축에 관한 한 자기네가 최고라 믿고 있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들 보다 훨씬 많고 디자인 강국 스위스와 현대건축에 앞서 나가는 네덜란드보다도 훨씬 앞선다.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일본이 부럽기도 하지만 우리 건축도 일본에 뒤지지 않는 평가를 받으려면 우리 스스로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건축과 문화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도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을 건설의 일부분으로 치부하는 생각을 바꿔야 하며, 건축은 건설산업이 아니라 건축문화라는 인식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앞만 보고 경제 발전을 위하여 숨가쁘게 달려왔다. 근대에 외세의 침략으로 부터의 해방과 6.25전쟁을 겪은 후 정신적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폐허화 된 한국은 재건의 기치를 들고 질적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혼란기 속의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제 3공화국에 접어들어 안정을 찾아가면서 1970년에 수재민 복구대책과 아울러 넓은 의미의 농촌 재건 운동을 착수하여 자조, 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마을 가꾸기 사업이 제창 된 것이 새마을 운동이다. 이것은 단순한 농촌 개발 사업이 아니라 공장, 도시, 직장 등의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 운동으로 확대 발전 하였다. 이런 운동은 1970년대 경이적인 경제 발전에 정신적인 힘이었다. 이러한 열정적인 힘은 경제 발전 뿐만 아니라 건축의 발전을 현재까지 이끌어 오는 원동력이 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여기에 건설 산업은 있었지만 건축문화는 없었다고 단정하고 싶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길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제까지는 경제발전에 부응하는 건설 산업이 있었다면 지금부터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건축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옛것을 잊거나, 잃어버리고 새로운 것만 찾는 우(愚)는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며, 우리의 훌륭한 건축문화유산이 셰계 유산에 등재되어 있듯이 선인들의 지혜와 우리의 고유한 미와 조상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건축물에서 그 시대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에 공자는 위정편(爲政編)에서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可以爲師矣(가이위사의)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옛것을 복습하여 새것을 아는 이라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 라는 뜻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암시를 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우리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훌륭한 건축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여야 한다.

따라서 건축문화는 그 시대의 역사성과 정체성, 그리고 문화와 예술을 내재하고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 멋있고 얘깃거리가 있는 건축물을 창조하여야 한다. 또한, 새로운 건축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건축과 다른 분야와의 친밀성이 있어야 하며 건축이 건축인의 전유물로 생각하지 말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건축사의 건축문화를 이끌어가는 열정과 꾸준한 노력이 대중과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 나라의 건축문화는 몇 몇 건축사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부부터가 건축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건축을 건설산업으로 생각하는 인식부터 앞장서서 바꿔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가 시장경제의 논리를 앞세워 건축설계를 건설시공업자도 할 수 있도록 추진하는 자체가 건축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몰상식한 행위가 아닌가?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건축을 산업이 아닌 문화로 인식을 하고 정부로부터 자격을 인정받은 건축사를 우대하고, 건축사와 머리를 맞대면 우리의 건축문화는 분명 건축문화강국으로 거듭나리라 확신한다.

우리는 언제나 이웃 일본과 많은 비교를 하며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려한다. 그러나 일본에게는 있고 우리에게는 없는 수모를 겪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프리츠커상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상은 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과 수준, 사회적인 영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건축환경과 정부가 앞장서 건축의 국제교류에 강력하게 지원하는 제도를 보면서, 마냥 부러움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정부도 건축사를 생각하고 건축문화발전에 힘을 기울인다면, 머지않아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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