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봉 논설위원
김준봉 논설위원

이제 장마가 지나니 완연한 가을이다. 짧은 가을이 지나면 곧 겨울이 온다. 눈보라치는 엄동설한 칼바람 불어오는 겨울이 오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따끈한 구들방이 그리워지리라. 한옥은 겨울용 온돌과 여름용 마루가 한 공간에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우리 한민족의 빛나는 문화유산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세계에 내어 놓을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를 물었을 때 한글, 금속활자, 그리고 우리 주거의 핵심인 온돌을 꼽는다. 온돌은 단지 한옥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으로도 통용될 수 있는 환경 친화형 건강건축의 한 요소로 보편성과 탁월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단이나 머름이 있는 이유도 
온돌과 관련이 깊다 

중국, 일본도 전통건축은 우리와 같은 중목구조이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닥 난방시설인 온돌(구들)의 유무에 있다. 머름과 기단은 우리 한옥의 멋과 조형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온돌의 영향이 크다. 온돌은 바닥 구조물로 1미터 정도의 깊이로 방바닥에 고래를 설치해야 하는 빈 공간이 필요한데, 배수와 지중기초구조 등을 고려할 때 기단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옥창호의 필수 구조인 머름역시 창호의 비례나 마당으로 부터의 시선 차단 등의 효과도 있지만 설비적으로 보면 툇마루가 달린 쪽의 문을 열더라도 구들 방바닥 온도의 급격한 변화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발은 따뜻하게 하고 머리는 차갑게 유지하는 두한족열을 지향하는 건강건축을 위한 구조가 바로 머름인 것이다.

*머름: 한옥 창호아래 설치된 높은 문지방을 말한다. 

이 온돌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물이 바로 아자방 온돌이다. 한번 불을 때면 49일간 따뜻하고 동안거와 하안거 90일간이나 온기를 간직했다는 전설의 구들, 지리산 칠불사 벽안당(일명 아자방) 구들이다. 구들방의 모양이 버금 아(亞)자 모양이라서 아자방이라고 하고, 구들 고래의 형상이 아자(亞字)형태라서 아자방이라고도 하는데, 과연 그 시기에 그만한 효능의 구들이 정말 있었을까?

칠불사는 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니까 거의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칠불사 아자방 터가 겨울에도 눈이 쌓이지 않고 녹아버리는 것을 보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전해지는데 그 건립 시기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악조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1세기경 신라 효공왕(재위 897-912) 당시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화상(曇空和尙)이 이중온돌방으로 지었다고 전해지고, 다른 기록으로는 칠불선원사적기에 신라지미왕 8년(119)에 아자방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의 아자방은 1830년(순조시기) 대화재로 소실돼 건물을 중창했는데, 여러 차례의 증개축을 하며 모습을 유지하다가 1949년 1월 여수·순천사건 시 국군이 작전상 이유로 칠불사의 모든 전각을 완전히 전소시켰으며, 198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1939년 9월 8일자 ‘천년아자방의 신비 편’의 기사에 따르면, “암내(당시는 칠불사가 아니고 칠불암 이었음)에 아자형(亞字形) 이중온돌방(二重溫突房)이 있는데 -중략- 한번 불을 때면 3일간은 온기가 골고루 지속된다는데...” 라는 기사가 나온다. 이는 당시 일반 민가에서는 부뚜막 구들이 보편적으로 설치되는 시절로 하루 밤 정도 따뜻한 것이 일반적이기에 3일간 따뜻한 것이 뉴스거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아자방은 방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측을 ‘ㄷ형’ ‘ㄷ형’으로 하여 방 안 네 귀퉁이에 바닥보다 350밀리미터 정도 높은 참선을 위한 ‘좌선처’를 마련하고 가운데 서서 휴식하는 ‘경행처’를 두는 구조로, 동안거 90일 수도하는 기간은 음력 10월 15일에 시작해 정월 보름날에 끝이 난다.

과학적 논리에 근거하여 볼 때 49일간 따뜻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 도 있지만, 아자방 구들은 열역학의 기본 원칙을 거스르지 않고 숯가마처럼 불을 꺼트리지 않은 채 많은 양의 땔감을 서서히 오래 타게 하면서 장시간 축열하고 천천히 발열 시키는 데 그 비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아자방의 발굴과 복원으로 
그 비밀이 일부 풀리고 있다

2014년부터 4년간 아자방지 해체 발굴결과 고려시대의 기층에서 다수의 건축물 축조 흔적과 석렬 등의 시설이 출토돼 현재의 아자방이 조선시대가 아닌 고려시대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증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온기를 간직하기 위해 장작을 한꺼번에 적재할 수 있는 아궁이의 존재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되는 ‘확돌’이 발굴됐고, 이 발굴결과를 토대로 아궁이의 상부구조가 아궁이 하부구조에 따라 길이는 2미터 정도이고 장정이 장작을 7짐이나 지고 들어가는 정도의 규모로 복원하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래서 먼저 아자방 체험관을 기존 아자방의 원형과 같은 1:1의 비율로 발굴내용을 기초로 건립해 충분히 온돌의 효과를 검증한 후에 그 성능이 확인되면 새롭게 복원되는 아자방의 아궁이 등 훼손되고 멸실된 부분을 복원 할 때 적용하는 근거로 삼기로 계획 했다. 
대개 온돌방 구조가 일자형(一字型)인데 비해 아자방은 격자형(格字型)을 하고 있다. 지금도 중국의 만주지방에 가면 고구려의 후예라고도 볼 수 있는 만주족들은 ‘ㄷ’자 형태의 구들인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현재 중국 요령성 심양 고궁이 우리 아자방과 유사한 형태인 구들로 되어 있다. 이곳은 옛 고구려 수도가 있던 지역으로 우리 아자방과 동일한 형태로 바닥에 온돌이 설치되어 있다. 중국 동북지역 농촌지역에 아궁이가 지하실형태로 되고 그 속을 왕겨로 가득 채워 한 달 정도 불이 꺼지지 않고 천천히 타들어가게 하는 아궁이가 있다.

이 체험관 용도의 아자방 아궁이는 가마형태이지만 가마형 함실 양쪽 측면에 홍예 형태로 방 좌우 양가로 들어가는 고래로 연결되는 부넘기를 만들고, 함실 속에서 발생한 열을 상하층 고래별로 골고루 분배하는 기능을 위해 와적을 이용한 매화구들형태를 적용했다. 또한 보조 아궁이가 있어 큰방을 데우면서 오래 불을 머물게 하는 기술을 찾아 체험관에서 재현 할 수 있었으며, 가마형으로 추정되는 아궁이 전면부가 발굴되어 문헌으로만 알려진 아궁이의 크기가 규명되었다.
 

한옥의 심장은 
온돌-한옥의 키워드는 건강건축

바야흐로 따끈한 구들방 아랫목이 그리운 계절이 왔다. 온돌은 건축의 일부시설이지만 우리 민속문화의 핵심이다. 전통온돌을 한민족의 핵심으로 이해한 최초의 학자는 우리나라 민속학의 창시자인 손진태 교수이고, 전통 온돌을 현대과학으로 연구한 최초의 학자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사를 지낸 현규환 박사이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모두가 온돌은 한민족 주거문화의 근본이고, 건강건축 중심요소로 보고 있다. 
아자방 온돌

-우리의 빛나는 문화유산- 
온돌문화 세계문화유산등재의 시
동을 걸자

서양의 건축사들이 주장하는 친환경건축은 우리 한옥의 기본일 뿐이다. 아자방은 우리 민족이 불을 다루는 솜씨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 주는 걸작 중에 걸작이며, 우리나라 전통 온돌기술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온돌문화는 이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천년 고찰 산사건축, 양동마을·하회마을·외암리민속마을 등 민가건축, 경복궁·창경궁 등 궁궐건축과 양주회암사지·칠불사아자방지 등 사찰건축에 이르기까지 모두 온돌이 그 건축물들의 핵심 요소이다. 우리 겨레는 불을 깔고 앉고 불 위에 눕는, 불을 잘 다루는 불같이 뜨거운 민족이다. 아직은 아자방의 흔적이 고려시기에 머물고 있지만, 향후 아자방지 부근의 유적들이 추가로 발굴되어 신라 담공선사가 지었다는 아자방의 원천 기술들이 찾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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